나, 이승엽, 그리고 야구

PUBLISHED 2006. 3. 7.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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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포츠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즐겨 하는 편도 아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유독 우리 집에서는 별난 편이라고 해야 할까? 아버지께서는 젊으셨던 때에 유도와 레슬링을 하셨고 그걸로 체전에도 나가셨다. 증거는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 흔적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사진이다. 빛바랜 오랜 사진이 집에 하나 있는데, 아버지께서 웃통을 벗고 있는 사진이었다. 역삼각형의 단단한 체구에서 무도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키가 자그마한 편이시지만 운동을 즐겨 하셨다고 하셨다. 배구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바로 아래 동생은 몸이 날랜 편은 아니지만 힘이 워낙 좋아 격투기에 관한 걸 이것 저것 익히고 다녔고, 겨울에는 스노보드 삼매경에 빠진다. 막내는 키는 작은 편이지만 몸이 워낙 날래서 각종 종목에 능하다. 어릴 때에는 유도도 했었고, 자기보다 큰 녀석들과 농구하는 것도 즐긴다. 막내가 한창 전성기(?)일 때에는 서전트 점프(Sargent jump, 어떤 사람의 제자리 수직 뜀뛰기 기록을 말하는 것으로, 미국의 체육 지도자였던 Dudley Sargent의 이름을 딴 것)가 80cm 정도에 달할 정도였으니까. 그에 비해 난 몸이 날래지도 않고, 격투기에 능하지도 않다.

그래도 가끔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국가 대항전일 때 혹은 시간이 날 때면 스포츠 중계를 보기도 한다. 그게 바로 지난 일요일, 3월 5일의 일이었다. WBC (World Baseball Classic) 한국 대 일본의 경기가 있었다. 두 팀 다 2 라운드에 올라가는 것이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우열을 가리기 위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르는 경기였다.

마침 친구 결혼식도 있고 해서 대구에 내려갔던 나는 식구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대구가 아니라 대전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경기 초반 일본의 주도 아래 우리 나라가 끌려 가는 형국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옆에서 연신 한숨을 내쉬며 답답해 하셨다. 그러던 중, 4회 말 2사 만루의 상황에서 이진영의 길이 남을 호수비, 5회 초 이병규의 희생 플라이, 그리고 8회 초 이승엽의 역전 투런 홈런에 힘입어 역전승을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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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보던 중, 아버지께서 한 마디 말씀을 하셨다. "이승엽이 네 몇 년 후배냐?" 마치 내가 이승엽을 잘 알고 있는 듯이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승엽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55호 홈런의 주인공, 김제동이 방송에 나오면 항상 이야기하는 선수, 이 정도가 다일까? 하하.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이승엽이 내 중학교 1년 후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중학 시절에도 이승엽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이른바 야구 명문이라고 불리던 중학교였지만 내가 다니던 시절은 야구의 암흑기였던 모양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역도부에 대한 기억이 강하다. 아침 조회 시간이 되면 항상 역도부에 대한 얘기가 나오곤 했다. 내 기억에만 따른다면 당시 역도부는 거의 전국을 휩쓸고 다녔다.

당시에는 야구가 더할 나위 없는 최고 인기 종목이었다. 1981년 우리 나라에 프로야구가 시작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 82년이었다. 당시 어린이들은 야구 관련된 학용품 하나 없는 녀석이 없었다. 책받침이나 필통, 책가방까지, 온통 프로야구 물결이 휩쓸던 시절이었다. 친구 중에는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OB 베어즈 지갑을 가지고 다닌 녀석도 있다. (대구 지역 야구 팬이라면 대부분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했지만 이 녀석은 유독 OB 베이저—현재의 두산 베어즈—의 열렬한 팬이었다. 바로 박철순 선수의 영향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영웅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야자 시간. 아이들이 마이마이 같은 카세트에 이어폰을 꽂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 (당시는 소니 워크맨은 웬만해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소니의 자회사였던 아이와 정도만 가져도 갑부(?)로 보던 시절이었다.) 갑작스레 모든 교실에서 함성 소리가 터진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이런 때에는 선생님들도 학생들을 그냥 놔 두신다. 문을 조용히 여시고는 "조용히 들어." 한 마디 하시고는 나가신다. 아마 선생님들도 한국시리즈 경기를 보고 계셨을 거다. 아무튼 이런 열기 속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까지 보낸 나에게도 이승엽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내가 이승엽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이승엽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후였다. 원래 투수였던 이승엽이었지만 타자로 전향한 이후에나 알게 된 것이다. 타자로 데뷔한 그 해, 제법 괜찮은 성적을 보였고 사람들은 괜찮은 "교타자"가 등장했다며 반겼다. 당시에는 양준혁이라는 걸출한 파워 히터가 당당히 버티고 있었고, 이승엽이 지금과 같은 홈런 타자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홈런 타자로 변신하고 나서도 초반에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랬던 타자였다.


즐겨 보지도 않던 야구라는 경기. 하지만 경기 한 장면이 갑자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어린 시절 '이만수'라는 이름을 친구들과 함께 합창하듯 연호하던 아련한 기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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