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의 정석? 아니면 발표 자료의 정석?

PUBLISHED 2007. 9. 2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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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제목의 파일을 하나 발견했다. 제목은 바로 <부킹 성공률을 높이는 나이트 클럽 매너(manner)>. 제목부터가 아주 자극적이다. 그런데 누가 이걸 어떤 용도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텍스트 파일이나 워드(Word) 포맷이 아니라 파워포인트(PowerPoint) 형태인 PPT 확장자로 만들어진 파일이었다. 어떤 "선수"가 다른 입문자(?)들에게 "작업" 방법을 전수하기 위해 만든 프리젠테이션 자료일까? 발표 자료에 작성자는 빠져 있고, 만든 날짜는 2004년 11월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거의 3년 전에 만들어진 자료이다.

내용은 아래에 이미지 파일 형태로 첨부하였다. 사실, 이러한 내용을 굳이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 가면서까지 제작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을 것이다. 일반 텍스트 파일로 만들면 몇 줄 안 적어도 될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 발표 자료가 가진 놀라운 설득력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파일 제목이 우스운가?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솔직히, 놀랍게도 "상당히 잘 만든 프리젠테이션 샘플"이다. 적어도 이 자료를 만든 사람은 한 두 번 발표 자료를 만들어 본 사람이 아니라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는 데 상당히 숙달이 된 사람인 것 같다. 이 글에서는 본문의 내용을 어떠한 도덕적인 잣대 등으로 가누지 않고 순수하게 발표 자료를 위한 샘플로 받아들이고 이에 관하여 이야기해 볼까 한다.

먼저, 왜 이 파일이 발표 자료의 정석을 따르고 있다고 이야기한 것인지 이유를 몇 가지 들고자 한다.


1. 탄탄한 구성

상당히 잘 구성되었다. 일반적으로 발표 자료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탄탄한 구성이 뒤따라야 한다. 사람들이 많이 추천하는 방식은 탑 다운(top-down) 방식으로 내용을 구성하라는 것이다. 즉, 큰 줄기를 먼저 이야기하고 세부 항목은 그 다음에 나타내는 방식으로 구성하라는 것이다.

본 자료의 구성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1. 도입
    1. 목차(2쪽)
      • 왜 부킹 매너가 필요한가
      • 실전 매너 학습
    2. 매너의 종류 (3쪽)
  2. 부킹 매너의 필요성
    1. 진정한 킹카라면 (5쪽)
      • 매너와 상관 없이 부킹은 계속된다!
    2. 그렇다면 무엇으로 승부해야 하는가? (6쪽)
      • 적당한 있는 척
      • 세련된 몸가짐
      • 화려한 언변
  3. 이것만 알면 80% 먹고 간다! - 실전 매너 학습
    1. 부킹 매너의 이해 (8쪽)
      • 부킹의 3요소
    2. 항목별 심층 학습 1: 적당한 있는 척 (9쪽)
    3. 항목별 심층 학습 2: 세련된 몸가짐 (10쪽)
    4. 항목별 심층 학습 3: 화려한 언변 (11쪽)
  4. 맺음말 (12쪽)
    • 기본이 중요하며 항상 부단히 수련하라

가장 먼저 나온 부분이 바로 [목차]인데, 여기에서는 앞으로 두 개의 대주제에 관해 이야기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다음으로 [개념 소개]를 하고 있다. "매너의 종류"라는 페이지가 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특정 분야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할 때에는 간단하게 개념을 소개하는 페이지를 집어 넣는데 그에 대해 정석대로 대처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본문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한 페이지가 빠졌다는 점 정도인데, 사실 그러한 부분은 발표 자료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고 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흠이라고 꼬집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도입부가 끝나고 나면 앞서 목차에서 이야기했던 대주제 두 가지에 대해 다시 세부 항목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대주제 하나하나를 이야기하면서 다시 이러한 항목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서는 "부킹 매너의 필요성" 대주제에 해당하는 "진정한 킹카라면" 페이지와, "실전 매너 학습" 대주제에 해당하는 "부킹 매너의 3요소"가 거기에 해당한다.

첫 번째 대주제인 "부킹 매너의 필요성" 항목의 첫 번째 소주제인 "진정한 킹카라면" 페이지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표 자료에서 보여 주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외모나 몸매,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 페이지인 "그렇다면 무엇으로 승부해야 하는가?" 페이지로 넘어가는 데 거부감이 없다. 이렇게 해서 "그렇다면 무엇으로 승부해야 하는가?" 페이지로 넘어오면, 앞서와 같이 킹카가 아닌 사람들이 가져야 할 덕목 세 가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나서 다시 두 번째 대주제인 "실전 매너 학습"이 시작되는데, 여기에서 다시 소주제로 다루는 내용이 앞서 "그렇다면 무엇으로 승부해야 하는가?" 페이지에서 나열했던 세 가지 항목이다. 즉, 앞선 주제에서 소개했던 항목을 다음 대주제에서 하나씩 풀어 헤치면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목차에서 이야기한 주장에 대한 뒷받침을 두 개의 대주제가 떠맡고 있고, 첫 번째 대주제에서 도출한 결론을 두 번째 대주제에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큰 주제가 먼저 나오고 작은 주제가 나중에 나오는 탑 다운(top-down) 방식의 전형이다.



2. 깔끔한 화면 구성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프리젠테이션이 왜 사람들의 이야기에 오르내릴까? 왜 스티브 잡스는 저렇게도 발표를 잘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스티브 잡스의 발표 자료에는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할까?

이 발표 자료 역시 그러한 깔끔한 화면 구성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일단, 자질구레하게 쓸 데 없는 군더더기를 붙여 놓지 않았다. 발표 자료에는 큼직큼직한 글씨로 제목과 키워드(keyword) 몇 개만 남기고 불필요한 표현을 자제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효과적으로 그림이나 그래프를 배치하여 시인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게다가 한 화면이라 하더라도 모든 텍스트가 한번에 드러나지 않는다. 중간 중간에 애니메이션을 이용하여 먼저 배경 이야기부터 한 후 중요한 키워드가 나중에 드러나도록 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하면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드러내지 않고 순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청중의 관심을 쉽게 끌어낼 수 있고 이해도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4쪽과 7쪽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대주제가 시작되는 곳에 새로운 주제가 시작됨을 알리는 페이지를 삽입하여 사람들이 주제와 주제 사이에서 혼동하지 않도록 하는 배려도 함께 하고 있다.



3. 명료한 내용

이 발표 자료는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하다. 또한 (내용 자체가 단순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한눈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일반적으로 발표 자료를 만들 때 쉽지 않은 부분이, 발표 자료에는 가급적 키워드만 이야기하도록 해야지 군더더기가 붙은 "문장"을 적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때 발표 자료를 만들던 사람이 딜레마에 빠지는 것은, 좋은 발표 자료는 또한 발표자의 설명을 듣지 않고 발표 자료만 봐도 내용을 알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해서는 안되지만 내용은 모두 전달되게 해야 하는, 아주 힘든 작업인 것이다.

그런데 본 자료에서는 이러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훌륭하게 잘 잡고 있다. 만약 5쪽, "진정한 킹카들의 모습"에서 비, 권상우, 이재용 대신 "누구나 봐도 한눈에 기억할 만한 호감이 가는 얼굴",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 "대한민국 상위 0.1%에 드는 재력",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면 훨씬 더 "불친절한" 발표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누구나 봐도 알 만한 전형적인 인물들의 사진을 통해 불필요한 언어 구사를 줄이고 더욱 직관적인 발표 자료를 구축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발표(프리젠테이션)를 잘하는 방법을 원하고 발표 자료를 멋지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싶어한다. 시중에 많은 책이 있고 인터넷에도 많은 글이 있지만 이렇게 한 가지 샘플을 놓고 왜 이것이 멋진 샘플인지 하나씩 따져 가면서 익히는 것도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킹 성공률을 높이는 나이트 클럽 매너(manner)>라는 황당한 제목의 발표 자료이지만 실상을 따져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훌륭한 자료인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올려 본다.

이 자료의 마지막 페이지(12쪽)에 있는 내용은 비단 나이트클럽 매너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라 세상 모든 분야에 다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기본에 충실하라, 항상 부단히 노력하라,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마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자료에서 먼저 해 버린 것 같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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